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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겸손, 미국인도 무릎 꿇게 하다...“존경 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먼저 존경하라” <상>

[특별인터뷰]세계속의 한국인을 만나다<3> 미국 플로리다 부부 태권도 사범 문현욱·전인애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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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신 기자
기사입력 2016-11-17

2015년 외교부 통계에 의하면 재외동포는 세계 180여 개국에 719만 명에 이른다. 남한 인구의 15%에 육박하는 재외동포는 각 나라에서 탄탄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민간외교관으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뉴스다임>은 세계속의 한국인을 만나다'란 주제로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을 취재했다. 세 번째 주인공은 미국 플로리다주 작은 도시 'NEW TAMPA'와 'SPRING HILL'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한국인의 겸손함으로 미국인들을 무릎 꿇게 만들고 있는 태권도 부부 사범 문현욱·전인애 관장이다.<편집자 주>

 

 

 

태권도 부부 사범 문현욱·전인애 관장     ©뉴스다임

 

 

- 두 분은 어떤 계기로 미국에 오게 됐고 여러 주 중에서 플로리다주에 정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문현욱 사범이야기가 좀 길지만 해 보겠습니다. 저는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군 장교출신인 아버지는 저희 형제들을 엄하게 키우셨습니다. 저는 막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두 형들과 달리 아버지의 엄한 가정교육에도 말썽을 많이 피웠습니다. 저를 보다 못 한 부모님은 정신교육이 될까 싶어 태권도 도장을 보냈는데 그때가 제 나이 5살이었습니다. 어린 저는 태권도를 좋아했고 도장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외국인 가족이 저희 도장을 방문했는데 사범님이 저를 불러 외국인 가족 앞에서 태권도 품새와 겨루기를 시범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시범을 마친 후 외국인 가족에게 "이것이 태권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시범을 본 외국인 가족은 크게 놀라워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원더풀~"을 연발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교에서도 말썽을 많이 피우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해서 선생님에게 혼도 많이 나고 주위에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터라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외국인의 칭찬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황홀감을 줬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게 꿈을 갖게 했고 그 꿈은 해외에 나가 많은 외국인들을 가르치는 멋진 태권도 사범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 외국인 가족들에서 시범을 보인 것이 문 사범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네. 그런 셈이죠. 그날 이후 세계적인 태권도 사범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중학교 가서는 태권도 겨루기 선수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중2학년 말에 아버지께서는 "태권도 그만두고 과외 선생님 붙여 줄테니 1년 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세계에서 활동하는 태권도 사범만을 꿈꿨던 저는 아버지 말씀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한없이 울며 "제가 가야 할 길은 태권도밖에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설득하려 노력했지만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태권도는 깡패들이나 하는 운동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제가 태권도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셨지만 태권도 사범보다는 공부를 해서 다른 길을 가길 원하셨기에 "태권도는 깡패들이나 하는 운동이다"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하시며 강하게 막으셨습니다. 태권도 사범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저는 큰 좌절에 빠져 몇 날 며칠 아무 것도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두 팔로 꽉 안아 주시며 '일단 아버지 말씀 따라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가자. 그럼 내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태권도장에 다시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격려와 사랑에 힘을 얻었지만 중2학년 때까지 공부는 하지 않고 태권도만 했던 제가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꿈을 위해 '백절불굴' 절대 포기하지 않는 태권도 정신으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명문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 진로를 바꿔 인문계 고교에 입학을 했지만 공부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기초가 부족했던 저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겨워 수업에 집중을 잘 못하고 공부를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1학년 때 여느 날처럼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데 제 옆을 지나가시던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생긴 건 멀쩡한데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며 한 마 디 던지셨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안쓰러워 한 마디 하신 것인데 그 당시 저는 무시를 받은 것 같아 화가 많이 났고 "그래, 하면 되지!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무한 반복 되뇌이며 죽어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니 차츰 성적이 올랐지만 제 마음은 오르는 성적만큼 기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태권도 사범에 대한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고2 중순 대학 진로를 어느 정도 결정해야 할 때가 되어 저는 어머니께 태권도학과 진학에 대해 말씀 드렸고 제 꿈을 아시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중3, 고1 내내 지켜보시고 열심히 공부는 하지만 밝지 못 하게 생활하는 제가 보기에 마음 아프셨는지 태권도학과 진학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고 다시 태권도장을 다니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년 정도 수련을 쉰 탓에 한동안은 수련이 힘들었지만 다시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기쁨에 아주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 체육신학대 태권도선교학과를 졸업하셨는데요.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1993년만 해도 서울에 태권도학과가 있는 대학은 경희대, 용인대와 제가 졸업한 체육신학대 3곳뿐이었습니다. 제가 생소했던 체육신학대를 선택했던 이유는 태권도 선교학과 재학생 선배들 중 반 이상이 국가대표 태권도 시범단원이었고 타 대학에 비해서 해외 시범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활은 정말 꿈 같이 보냈습니다. 태권도 수련을 오래 했지만 시범이라는 신세계를 국가대표 시범단원인 선배들에게 배웠고 해외 시범을 다니며 인생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동기들과 함께 하며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나고 훈련이 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꿈꿨던 순간들이었기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신앙인이었지만 체육신학대에 진학하기 전까진 신앙심이 그리 깊진 않았습니다.체육신학대 태권도 선교학과를 진학한 주된 이유도 신앙보다는 해외 활동을 타 대학 보다 많이 할 수 있다는 것과 국가대표 시범단원 선배들이 많아 태권도 시범에 대해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대학 생활을 하면서 신앙심도 아주 깊어졌습니다.

 

▲ 1995년 '할렐루야 태권도 시범단' 활동 중 문현욱 관장 시범 장면     © 뉴스다임

 

체육신학대 태권도선교학과가 주축인 '할렐루야 태권도 시범단'이 다른 태권도 시범단과 차별되는 것이 있는데 태권도정신과 기술 시범만이 아닌 기독교 신앙, 특히 예수님의 생과 사랑을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시범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태권도 시범단'은 선진국 시범도 다녔지만 개발도상국에 시범을 많이 다녔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시범은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했습니다.

 

신발도 없이 맨발로, 티셔츠 하나 없이 맨몸으로 생활하는 아이들이 저희의 시범을 보고 환호하고 시범을 마친 후 저희에게 몰려들 때 저는 신발이 없어 맨발인 아이에게 제가 신고 있던 태권도화를 신겨 줬고 땀에 젖은 도복이었지만 티셔츠 한 장 걸치지 않았던 아이에게 도복을 입혀 주었습니다.

 

그럴 때 너무나 좋아하며 환하게 웃고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보며 태권도 선교의 비전을 보았고 태권도 선교사의 꿈을 강하게 품게 됐습니다.

 

▲ 문현욱 관장, 시범 전에 기도하는 모습     © 뉴스다임

 

 - 체육신학대를 가게 된 것이 문 사범님에게는 또 한번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네요.

 

네. 제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태권도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개발도상국으로 가려는 제가 걱정이 많이 되셨는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필라델피아에 추천 사범으로 처음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추천 받아 온 곳은 제가 바라던 곳과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 실망감이 컸고 힘겨운 생활에 매일 울며 기도하다 잠이 들곤 했습니다.

 

무슨 감동이 됐는지 열대 지역, 야자수 나무가 많이 있는 곳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고 싶은 생각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야자수 나무와 해변이 펼쳐진 파라다이스 같은 곳을 꿈 꾼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무덥던 나라, 뜨거운 모래 바닥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던 곳, 그 지역 아이들과 해변에서 축구도 하고 태권도를 가르쳤던 기억이 첫 사랑처럼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더 이상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라고 결심했을 때 필라델피아로 추천을 해줬던 아버지 지인이 연락을 주셔서 "그곳이 정 힘들면 한국으로 바로 오지 말고 미국 플로리다로 가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미국 플로리다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휴양지 정도로 생각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야자수가 많은 열대성 기후에 마음 문이 확 열렸습니다.

 

이렇게 플로리다로 오게 됐고, 대학 때 친구였던 아내와 함께 자리를 잡고 결혼해 13살 딸, 12살 아들을 슬하에 두고 17년째 살고 있습니다.

 

전인애 사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데 남편이 저보다 미국에 3년 정도 일찍 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선택지 없이 플로리다로 오게 됐어요.

 

▲ 심사석에서 심사 중인 전인애 관장      © 뉴스다임

 

 

* 문사범님은 어릴 적 꿈을 향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고, 전 사범님은 사랑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거네요.

 

- 어떤 매력 때문에 미국인들이 태권도 수련을 좋아하는 건가요?

 

문현욱 사범 미국만이 아닌 세계 각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좋아합니다. 그 말은 쉽게 말해 태권도가 좋다는 얘기죠.

 

현재 새로운 무술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무술들은 그 시대의 패션처럼 반짝이다 사라지곤 합니다. 하지만 태권도는 오랜 시간 발전하며 그 자리에 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건 왜일까요? 화려하고 강한 발차기, 배우기 쉽고 간단한 자세지만 단번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태권도 속에는 한국의 정신문화, 인성교육이 담겨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태권도 도장에 보내신 이유 중 한 가지가 정신교육과 인성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정신, 인성문화와 태권도의 화려한 기술의 매력에 빠져서 미국 사람들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 문현욱 관장, 미국 플로리다 탬파 한인 태권도 선교단과 시범 중 '돌개차기'    © 뉴스다임

 

 전인애 사범 - 얼굴이 다르고 피부색은 다르지만 이곳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 입장은 똑같아요.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자신감을 갖도록 굉장히 신경씁니다.

 

동양 문화에 관심도 있고 특히 미국식 예절과 한국식 예절은 아주 다르기 때문에 한국 사범들이 가르치는 도장을 좋아해요. 왜냐면 저희 문화로 이해할 때 조금 우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저희 학생들이 도장에 와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부모님께 물건을 두 손으로 공손히 드리면 너무 감격하세요. 이곳에선 가정과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쳐 주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이유에서 이곳 학부모들은 외국인 사범보다는 한국인 사범들과 수련하는 것을 좋아해요.

 

▲ 수업 중 가부좌, 정좌 자세로 명상 중인 미국 학생들     © 뉴스다임

 

- 미국인들이 태권도를 좋아하고 태권도 사범을 존경하며 따른다고 하지만 동양인, 한국인으로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범이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문현욱 사범- 저는 "존경 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먼저 존경하라"는 말을 수업시간에 자주 합니다. 사범으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해요. '나는 사범이니 너희들은 나를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먼저 다가가고 도장에 들어오는 학부형들에게도 먼저 허리를 숙이며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도장에 오는 부모들 모두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은 잘합니다. 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께서도 항상 '사범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며 몸가짐을 단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도장에서 아이들이 쓰는 화장실을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을 멈추고 저를 쳐다봤고 한 학생은 "사범님도 화장실에 가시나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은 사범을 신비주의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도자로서 모든 행동을 신경 쓰고 조심하게 됩니다.

 

그 일 이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버리게 됐습니다. 밖에 나갈 때도 옷차림을 단정하게 신경 쓰고 술 담배도 끊고 학생들이 생일파티에 초청해도 가서 실수할까봐 가지 않았고 또 저희 자녀들이 사람들 앞에서 실수할까봐 조심을 시키기기도 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미국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것과 이 나라 언어였습니다.예를 들어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말을 듣지 않아 벌을 세워 놓고 교육을 하는데 그 학생은 제가 말할 때마다 고개를 들고 똑 바로 쳐다봤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자랄 때만 해도 한국에선 어른이 말하면 고개를 숙이고 듣는 게 예의이고 고개를 들고 똑바로 쳐다보면 버릇없이 반항하는 것이란 사고를 하고 있었기에, 그 제자의 행동에 더 화가 나서 "어디 사범이 얘기하는데 고개를 들고 똑바로 쳐다보냐?"며 화를 더 낸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른이 이야기할 때나 상대가 이야기할 때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며 듣는 것이 예의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눈을 피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죠.

 

지금 생각하면 저를 쳐다본다고 제자에게 화를 냈던 제 모습이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이런 세세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모르면 오해를 하고 제대로 된 지도를 할 수 없으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도 했습니다.

 

 

▲ 심사를 마치고 제자들과 문현욱 관장(앞줄 맨 오른쪽)    © 뉴스다임

 

 

- 전인애 사범님은 여성으로 남자 사범과 다른 힘든 점이 있었나요?

 

처음부터 남편과 같은 도장에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거나 어려웠던 기억은 없어요. (제 대답이 너무 재미없죠?)

 

문 사범이 미국에 3년 먼저 와서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그런지 학생들과 관계가 아주 끈끈하고 좋더라고요. 처음 도복 입고 도장에 따라가니 학생들과 학부형들 모두 누군가 하고 쳐다봤고 다른 도장에서 온 동양인 여자애가 검정 띠라며 보이지 않게 제게 텃세를 부리더라고요.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처음 도장에 간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첫 날 첫 수업이 겨루기 수업이었는데 수업에 들어온 수련생들이 시범단과 블랙벨트 청소년 수업이었어요. 여기 도장에서 운동을 제일 잘한다고 하는 팔팔한 청소년들과 어릴 때 시합 뛰던 중고 연맹 결승 경기처럼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했어요.

 

여기 계신 원로 사범들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7, 80년대엔 미국인 사범과 한국인 사범들 사이에 도장 간판 걸고 싸우셨다고 하시던데 전 첫 수업에 겨루기로 사범 신고식 치렀습니다. 사범 신고식을 하듯 마친 수업 후 문 사범이 엄청 빠르게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제 소개를 시키더라고요. 저는 겨루기 수업으로 제 소개를 다한 격과 같은데 말이죠.

 

제가 도복을 입고 있을 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Mrs. Moon이에요. 미국 문화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라 가지만 한국은 안 그렇잖아요. 그리고 저는 여자이지만 태권도 사범이고요. 그럴 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넌 태권도 수업을 문 사범님 와이프에게 배우러 오냐고요?"

 

지금은 괜찮은데 처음 1년은 학생들이 유능한 사범님과 수련을 해서 그런지 저를 사범으로 인정하는 듯하면서 인정하지 않았어요. 학생들과 같이 운동하고 시범도 같이 다니며 보여줬더니 그제야 호칭도 Master Jeon(전 사범님)으로 제가 뭐라 말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지금은 새로운 학생들이 간혹 Mrs. Moon이라고 말하면 기존에 있는 학생들에게 엄청 혼나요.

 

남자 사범이라서 혹은 여자 사범이라서 힘든 것보다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학생들을 변화시키지 못 할 때 참 힘들어요. 태권도장에 올 때는 인성 교육이나 자신감 향상 등 학생과 부모 모두 변화되는 자기 모습들을 기대하고 오는데 기대만큼 피드백이 없으면 힘들죠.

 

▲ 전인애 관장의 옆차기     © 뉴스다임

 

 

* 역시 태권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네요. 문 사범님의 솔선수범 지도, 전 사범님의 실력으로 말한 '바디 랭귀지' 두 분 너무 멋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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