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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볼때 누구든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특별인터뷰]한국을 사랑하는 세계인을 만나다<4>독일 벤야민 스코엔펠드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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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신 기자. 김지연 기자(번역)
기사입력 2017-02-10

 한류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 남미까지 불면서 한국을 찾는 세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3.1% 증가한 1459만 명으로 집계됐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을 찾는 세계인들, 한국의 매력에 빠진 그들을 <뉴스다임>이 만났다.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인을 만나다란 주제로 진행하는 시리즈 인터뷰, 네 번째로 만난 사람은 독일의 벤야민 스코엔펠드(Dr. Benjamin Schoenfeld)역사학 박사. <편집자 주> 

 

▲ 벤야민 역사학 박사(Dr. Benjamin)         © 뉴스다임

 

 

- 현재 하는 일과 자기소개를 한다면?

 

저는 5성급 호텔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전문 호텔직원 교육을 받은 후 뮌헨대학교에서 중세 역사와 근현대 역사 및 정치학을 전공했고, 2015년 단과 대학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3년 간 디지털 인문학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했고, 11세기/12세기 교황 문서의 문자발달에 관한 연구로 2016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는 제 고향인 뮌헨에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다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문학을 사랑합니다. 일하지 않을 때는 가족들과 기르고 있는 애완견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외에도 몇 년 전부터 태권도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는데, 태권도를 계속 하다 보니 최근 몇 년 간 한국과 한국의 가치 그리고 한국 역사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됐습니다.

 

▲ 알프스에 있는 산의 정상에서.    © 뉴스다임

 

- 역사를 전공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역사는 인간, 국가, 문화권 또는 이와 유사한 결합체의 사고방식과 행동 구조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하나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 체계와 방법론적인 도구들을 학습해 과거로부터 추론해내고,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며 판단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에도 여러 분야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분야의 역사를 전공했는지?

 

제 전공은 유럽 중세시대 역사이며, 특히 교회역사를 세분화해 공부했습니다. 제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11세기/12세기의 교황 제도 역사에 대해 다루며 교황선언문의 특수한 문자 전달 매체에 대해 연구하면서 교회의 분파가 이루어지면서 서로 겨루었던 교황들의 행동 전략과 정치적인 소송 대처 방식을 분석했습니다.

 

▲ 자신의 연구에 대해 강의 중인 '벤야민 박사 '   © 뉴스다임

 

 

- 그 분야를 전공한 이유가 있는지?

 

중세시대 교황 제도는 전통적으로 지구상의 여러 대륙에 걸쳐 광범위한 접촉이 있었던 제도입니다. 이 교황 제도 내에서, 그리고 이 교황 제도를 통해 외국의 폭넓은 학식과 무수한 지식이 모아졌기 때문에 유럽과 유럽을 넘어선 곳의 역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곳에서 내려진 결정은 문화적, 종교적으로만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중차대한 정치적인 문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결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 결정이 현재와 미래에 끼치는 영향들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 역사에 대해 정의한다면?

 

수많은 문화권의 학자들이 이 질문을 가지고 자신의 책 전체를 채웠던 질문입니다. 저 스스로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라는 개념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은 과거의 것을 이해하고, 재건하고, 다시 활용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역사학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과 현상에 대한 질문을 분석하고 때에 따라서는 현재와 미래에 해당되는 문제에 접근하려고 시도합니다. 역사 연구는 미래를 내다보는 학문입니다. 모든 분석 대상은 (교육 등의) 사회적인 영향, (종교 등의) 문화적인 영향, (이데올로기와 같은) 정치적인 영향들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비유를 들자면 과거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개의 안경을 끼고 동시에 꿰뚫어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현상도 다르게 비중을 두고, 달리 제시되며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란 하나의 가설과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지?

 

지금까지는 독일어로 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그동안은 독일 역사 연구에 중점을 두었는데  앞으로 한국 역사의 비중을 높여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로 방문했었나?

 

제가 여섯 살 때 뮌헨에 있는 태권도 도장을 방문해 독일에서 태권도로 유명한 고의민 사범님을 소개받게 됐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서 저는 한국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됐고, 어렸기 때문에 아무런 선입관 없이 빠르게 소위 이방 세계의 것을 거부하지 않고 제 삶을 위해 깊이 있게 배워나갔습니다.

 

청소년기와 대학 생활도 태권도와 함께 보냈습니다한 세미나에서 사범님을 알게 됐는데 모든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한국을 방문하도록 초대해 주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마친 후 저 스스로에게 한국 여행이란 큰 선물을 했고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

 

3주간의 강도 높은 태권도 훈련이 여행 프로그램에 계획돼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만들었던 좋은 추억과 인상적인 순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 서울 남산타워에서     © 뉴스다임

 

- 한국을 방문하기 전과 직접 방문해서 본 한국의 다른 점이 있었다면?

 

문화와 전통, 발전이 공유되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며 배웠습니다. 한국 사회가 국가의 정치, 문화,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매우 놀랍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독일은 공통점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945년 이후 양국의 역사는 많은 관점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몇 십 년 만에 강도 높은 노동과 경제/사회 정치적인 전철 작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한국과 독일 사이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 여러 경제 분야에서의 긴밀하고 신뢰감 높은 협력 관계 및 정치적 관계만 보아도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국은 현재 인구 통계학적 추이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양국이 계속해서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상호 신뢰 관계를 공고히 하며 서로에게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을 방문한 이후 한국에서 일정기간 동안 일하며 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독일에서는 급격하게 그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전보다 이 가치들을 더 강하게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또한 태권도도 제가 독일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르게 배움으로써 저의 직업과 사적인 삶에도 계속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 뉴스다임

 

- 최근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 최근 독일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 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거리로 나와 평화 촛불집회를 통해 나라를 바로잡아 가고 있는데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는지?

 

이러한 유형의 평화 집회는 민주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도구로서 한 국가의 역사 발전 과정에 있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서울에 모인 것은 자신들의 책임과 참여의지를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전 동독의 여러 대도시에서 1989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월요 시위'라 불렸던 집회를 했습니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외침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통일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던 이 평화시위를 살펴본다면 평화적이지만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참여를 통해 진행되는 지속적인 발전과정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 한국과 일본의 과거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양국의 과거는 안 좋은 사건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일본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거리감을 두는 것이 느껴지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독일인, 유럽인으로서 저는 예전에는 '철천지 원수'같았지만 좋은 이웃 국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우호를 다지게 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럽 질서에 중요한 핵심을 구축한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를 보면 이러한 길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관계가 앞으로는 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 한국인들에게 가장 민감하고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역사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 1905년 한일조약을 맺은 후 일본의 한국합병은 부당했고 한반도는 40년이라는 식민지시대를 겪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일본의 20세기를 다룬 역사교과서는 커다란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데, 역사왜곡이 얼마나 잘 못된 일인지에 대해 한 말씀한다면?

 

저희 나라의 과거를 살펴볼 때 독일인으로서 이에 대해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집단적인 역사 이해의 구조에 대해 또는 다른 정치적인 목적으로 편파적인 역사적 관점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개인이든, 사회 또는 국가든 누구든지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평화 구현을 우선시하는 것은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동북아와 세계에 어떤 역사가 쓰여지길 바라나?

 

1980년대 이후의 한독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어떤 분야에서 협력이 잘 됐고, 어느 부분에서 협력을 확대할 수 있을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럽 중세 시대 전공한 사람으로서 신라 시대(668-935)와 고려 시대(936-1392)의 한국 역사를 다룬 독일어 자료도 즐겨 볼 것 같습니다.

 

 

*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벤야민 스코엔펠드 역사학 박사 약력

- 전문 호텔리어 교육 수료

- 뮌헨대학교 역사 및 정치학 전공

- 디지털 인문학 분야 연구원 역임

- 태권도 1단

 

 

- Guten Tag Herr Dr. Schönfeld! Erzählen Sie uns zu Ihrem beruflichen Werdegang und berichten Sie uns über sich selbst.

  

Nach meiner Ausbildung zum Hotelfachmann im Five Star-Deluxe Hotel Mandarin Oriental, Munich studierte ich die Fächer Mittelalterliche Geschichte, Neuere/Neueste Geschichte und Politikwissenschaft an der Ludwig-Maximilians-Universität München und schloss im Jahr 2015 unter den 10% der Besten meiner Fakultät ab. Anschließend war ich dort für drei Jahre als wissenschaftlicher Mitarbeiter im Bereich der Digital Humanities tätig und wurde 2016 mit einer Studie zur Schriftentwicklung in päpstlichen Urkunden des 11. und 12. Jahrhunderts zum Dr. phil. promoviert. Heute arbeite ich für das Sozialreferat (social welfare / Social Service Department) meiner Heimatstadt München.

 

Ich reise sehr gerne und interessiere mich für andere Länder, deren Menschen und Kultur. Ich spiele seit vielen Jahren Klavier und liebe Literatur. Neben meiner Arbeit verbringe ich sehr gerne Zeit mit meiner Familie und meinem Hund. Darüber hinaus trainiere ich seit mehreren Jahren Taekwondo. Das Training hat dazu geführt, dass ich mich in den letzten Jahren verstärkt mit Korea, seinen Werten und seiner Geschichte befasse.

 

- Was brachte Sie dazu Geschichte zu studieren?

 

Ich halte Geschichte für einen Schlüssel, mit dem man Denkweisen und Handlungsstrukturen eines Menschen, eines Landes, eines Kulturkreises oder eines ähnlich gearteten Verbundes verstehen lernen kann. Aus diesem Grund wollte ich Denksysteme und methodische Instrumentarien erlernen, um aus dem Vergangenen Schlüsse ziehen zu können, sowie Entscheidungen für die Zukunft treffen und beurteilen zu können.

  

- Nennen Sie uns Ihr Spezialgebiet?

  

Mein Spezialgebiet ist die Geschichte des europäischen Mittelalters, vor allem im Bereich der Kirchengeschichte. In meiner Dissertation habe ich mich mit der Geschichte des Papsttums im 11. und 12. Jahrhundert befasst und habe mit Urkunden (charters) spezielle Schriftträger untersucht, in denen ich Handlungsstrategien und politische Prozesssteuerung von Päpsten analysierte, die während eines Schismas miteinander konkurrierten.

 

Warum haben Sie sich gerade für diesen Bereich entschieden?

 

Das mittelalterliche Papsttum ist eine Institution, die traditionell über umfassende Kontakte zu vielen Teilen der Erde verfügte. In ihr und durch sie wurden umfangreiches Wissen und zahlreiche Kenntnisse des Fremden zusammengetragen, was sicherlich die Geschichte Europas und darüber hinaus nachhaltig beeinflusste. Die hier getroffenen Entscheidungen nahmen nicht nur bedeutenden Einfluss auf kulturelle wie religiöse, sondern auch auf maßgebliche politische Fragen dieser Zeit. Die Entstehung solcher Entscheidungen und ihre Auswirkungen auf Gegenwart und Zukunft wollte ich verstehen lernen.

 

Wie würden Sie den Begriff „Geschichte“ definieren?

 

Eine Frage, mit denen Gelehrte aus zahlreichen Kulturkreisen ganze Bücher füllten. Ich versuche, mich mit der folgenden - selbstredend nicht vollständigen - Definition dem Begriff zu nähern: Die Geschichtswissenschaft nimmt sich vor, Vergangenes zu erfassen, zu rekonstruieren und nachzubereiten. Sie versucht, Fragestellungen zu Geschehnissen und Phänomenen, die aus der Vergangenheit herrühren, zu analysieren und - in Teilen - für Fragen, die die Gegenwart und Zukunft betreffen, heranzuziehen. Geschichtsforschung ist eine perspektivische Wissenschaft. Jeder Analyst ist in verschiedenem Maße durch soziale (z.B. Erziehung), kulturelle (z.B. Religion) und politische Einwirkungen (z.B. Ideologie) geprägt. Bildlich gesprochen muss jeder, der die Vergangenheit betrachtet, durch mehrere Brillen zugleich hindurchsehen. Es kommt deshalb vor, dass gleiche Phänomene unterschiedlich gewichtet, dargestellt und beurteilt werden. Geschichte, so meine These, ist deshalb mehr oder weniger ein Konstrukt.

 

- Sind Sie mit der Geschichte Koreas vertraut?

 

Nur soweit die deutschsprachige Literatur dies zulässt. Ich würde mich freuen, wenn die Geschichte Koreas in Zukunft noch mehr in den Mittelpunkt der historischen Forschung in Deutschland rücken würde.

 

Sie haben Korea bereits einmal besucht. Was brachte Sie zu Ihrer Reise?

 

Als ich sechs Jahre alt war, ermöglichte mir mein Vater in der Taekwondo-Schule des Großmeisters Ko Eui Min Taekwondo kennen zu lernen. Dies war mein erster Kontakt mit Korea. Als Kind lernte ich schnell und unvoreingenommen, das vermeintlich Fremde zu ergründen, anstatt es abzulehnen, um für das eigene Leben zu lernen. Taekwondo begleitete mich durch meine Jugend und mein Studium. Auf einem Seminar lerne ich einen Großmeister kennen, der alle Teilnehmer einlud, Korea zu besuchen. Nach dem Abschluss meiner Dissertation schenkte ich mir selbst eine große Reise und nahm die Einladung an. Drei Wochen intensives Taekwondo-Training standen auf dem Programm. Darüber hinaus denke ich an unzählige schöne Erinnerungen und faszinierende Eindrücke während meiner Zeit in Korea zurück.

 

Hat Ihr Besuch in Korea etwas in Ihrem Leben verändert? Was hat er Eindrücke hinterlassen?

  

Ich habe das Miteinander zwischen Kultur, Tradition und Fortschritt auf eine neue Art zu verstehen gelernt. Die Anstrengungen der koreanischen Gesellschaft, sich für die politische, kulturelle und wirtschaftliche Entwicklung in ihrem Land einzusetzen, sind bewundernswert. Außerdem gewann ich den Eindruck, dass Deutschland und Korea viele Gemeinsamkeiten haben. Die Geschichte beider Länder nach 1945 ist in vielen Punkten sehr ähnlich. Sie waren durch die Folgen von Kriegen total zerstört und haben in wenigen Jahrzehnten intensiver Arbeit, sowie wirtschafts-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Weichenstellungen große Fortschritte erzielen können. Die bereits bestehende enge und vertrauensvolle Zusammenarbeit zwischen Korea und Deutschland in vielen Wirtschaftsbranchen und die politischen Beziehungen zeigen ein Bewusstsein für diese Gemeinsamkeiten. Beide Länder sehen sich aktuell aber auch mit Phänomenen wie der demographischen Entwicklung konfrontiert. Ich halte es für wünschenswert, dass die Zusammenarbeit beider Länder weiter gestärkt wird, dass man das gegenseitige Vertrauen stärkt und voneinander lernt. Seit meinem Besuch kann ich mir gut vorstellen, für einige Zeit nach Korea zu kommen, um dort zu leben und zu arbeiten. Ich habe in Korea Erfahrungen mit Werten gemacht, die in Deutschland stark an Bedeutung verloren haben. Diese versuche ich, stärker als zuvor zu leben. Außerdem trainiere ich Taekwondo anders als ich es zuvor tat und lasse es immer stärker auf mein berufliches wie privates Leben wirken.

 

- Haben Sie von den Protesten und Demonstrationen, die zuletzt in Seoul stattfanden, gehört?

 

Ja, in den deutschen Medien war das Thema zuletzt sehr präsent.

 

Welche Position vertreten Sie als Historiker gegenüber solchen friedlichen Protestaktionen tausender Menschen?

 

Diese Art des friedlichen Protestes halte ich als Mittel demokratischer Mitgestaltung am Fortgang der Geschichte eines Landes für vorbildlich. Die Demonstranten in Seoul, die aus vielen Teilen des Landes zusammengekommen sind, zeigen, dass sie ihre Verantwortung, ihren Partizipationswillen ernst nehmen. In vielen Großstädten der ehemaligen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DDR) trafen sich im Jahre 1989 tausende von Menschen zu den sogenannten Montagsdemonstrationen. Ein Blick auf diese friedliche Protestbewegung, die durch den Ruf „wir sind das Volk“ weltweit Bekanntheit erlangte, und in großem Maße zum Fall der Berliner Mauer und zur Wiedervereinigung Deutschlands beitrug, zeigt, welch nachhaltige Fortentwicklungsprozesse durch friedliche, aber konsequente Partizipation bewirkt werden können.

 

- Wie beurteilen Sie das Verhältnis zwischen Japan und Korea im Laufe des 20. und des beginnenden 21. Jahrhunderts?

 

Die Vergangenheit beider Länder wurde bekanntermaßen von schlimmen Geschehnissen geprägt, weshalb verständlicherweise bei vielen Koreanerinnen und Koreanern bis heute Abneigung und Distanz gegenüber dem japanischen Nachbarn zu spüren ist. Als Deutscher und Europäer möchte ich die Beziehungen Frankreichs und Deutschlands als Beispiel dafür nennen, dass gemeinsame Anstrengungen für gute nachbarschaftliche Beziehungen auch bei ehemaligen „Erzfeinden“ zu enger Zusammenarbeit und Freundschaft führen können. Dass ein solcher Weg sehr viel Energie und ständige Bemühungen verlangt, zeigt das Beispiel der deutsch-polnischen Beziehungen, die trotz der unfassbaren Gräueltaten der Deutschen einen wichtigen Angelpunkt in der gegenwärtigen europäischen Ordnung darstellen. Ich hoffe, dass die Zukunft der koreanisch-japanischen Beziehungen im Zeichen der Annäherung und nicht der Entfernung stehen werden.

  

 Wir möchten Ihnen gerne eine Frage zu einer sehr sensiblen Thematik der Geschichte Koreas befragen: Nach der japanischen Annexion Koreas folgten für die koreanische Halbinsel 40 Jahre brutaler Kolonisation. Darstellungen japanischer Historiker dieser Zeit werden bis heute kontrovers diskutiert und als Verdrehung der Tatsachen gesehen. Wie stehen Sie als Historiker zu Umdeutungen von Geschichte und welche Gefahren verbinden Sie damit?

  

Mit Blick auf die Vergangenheit meines eigenen Landes kann ich als Deutscher mir hier nur insoweit ein Urteil erlauben, als dass ich den Missbrauch tendenziöser historischer Perspektiven für die Konstruktion eines kollektiven historischen Verständnisses oder für andere politische Zwecke generell für nicht ungefährlich halte. Ich erachte es für unentbehrlich, dass jeder - ob Privatperson, Gesellschaft oder Staat - die Verantwortung für das eigene Handeln und dessen Konsequenzen zu tragen hat und entsprechend vorrangig für die Wiederherstellung von Frieden geradestehen sollte.

  

- Welche Forschungsarbeiten zur Geschichte Südost- und Nordostasiens würden Sie in der Zukunft gerne verwirklicht sehen?

  

Eine grundlegende Untersuchung über die deutsch-koreanischen Beziehungen seit den 1980er Jahren würde mich sehr interessieren. Hier vor allem um zu sehen, in welchen Bereichen die Zusammenarbeit gut funktionierte und wo sie noch ausbaufähig ist. Als Spezialist für das europäische Mittelalter sähe ich gerne auch eine deutschsprachige Darstellung der Geschichte Koreas während der Perioden Shilla (668-935)und Koryo (936-1392).

  

* Wir danken Ihnen herzlich für das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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