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다임기획]'지성이'가 발로 쓴 유럽사진첩<18>

리기산 정상에 서다, 그리고 빈사의 사자상!

- 작게+ 크게

김지성 대학생 기자
기사입력 2017-08-01

군 입대를 앞두고 황금 같은 공백의 시간을 얻었다.

이 백지 위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 배낭 싸 메고 꿈에 그리던 유럽 대륙으로 떠난다.

하얀 백지 위에 지성이가 담아 내는 유럽의 사진첩을 함께 보자.<편집자주>

 

아침이다아버지는 어느새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바깥에 다니시다 들어오셨다.

호텔에서 조식은 제공하니, 아침을 먹어야 한다.

잃어버린 수하물 때문에 자금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아버지는 벌써 사무실을 기웃거리시다가 오셨다. 얼핏 봤을 때 사무실에 수하물이 안왔다고.

영어를 못하시니 물어볼 수도 없고, 두 아들들은 자고...

 

밥먹으러 가는 길에 사무실에 들른다.

에어베를린에서 수하물 3개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리셉션 직원이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대답해 주니 왔다고 한다.

짐이 왔다고 한다. 3개가 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직원은 400유로를 내야 한다고 한다.

당황스럽다. 내 동생이 직원에게 이야기 한다.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닌데 우리가 내냐고 하니,

직원이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한다.

우리의 수하물을 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진 정도가 아니라 기뻐서 얼굴에 다들 웃음꽃이 피었다. 천만다행이다. 모두의 수하물이 안전하게 와서 다행이다.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한다.

일정이 조금 지체되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빨래를 하고 짐을 싸고 루체른으로 이동한다.

하루 내로 리기산과 필라투스를 보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

루체른 호스텔에 짐을 풀고 리기산을 향해 떠난다.

 

리기산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산행 코스는 올라갈 때의 코스와 내려갈 때의 코스를 다르게 해서 계획하였다. 리기산의 경우 리기산에서 베기스까지 여객선을 이용하고, 베기스에서 리기 캍트베드까지 케이블카, 칼트베드에서 정상까지 톱니바퀴 열차를 이용한다. 반대로 내려갈 때에는 정상부터 피츠나우까지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내려온 후 여객선을 이용하여 루체른까지 온다.

 

유럽에서 경험했던 호수들은 굉장히 크다. 그 중에서 인상깊은 호수들을 이야기해 보자면 그문덴. 그문덴은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해질녁의 오르트 성은 매혹적이다. 그리고 할슈타트. 피요르드 지형에 물이 차면 가파른 산 사이에 호수가 형성이 되는데 그 경사를 다라 집을 지어 매우 아름답다.

 

루체른의 호수는 가파른 산을 끼고 있지는 않다. 다만 건물들이 아름다울 뿐이다.

루체른에서 배를 타고 베기스까지 이동한다. 배의 이동방향 오른편으로 산이 하나 보인다.

필라투스 산이다. 내일 올라갈 산이다. 가파른 절벽과 뾰족한 봉우리로 무장한 산.

내일 올라갈 기대를 잔뜩 안고 오늘은 눈으로만 보기로 한다.

 

▲ 베기스로 이동하는 배 안에서 보이는 필라투스 산     © 뉴스다임

 

날씨가 맑다. 맑은 날씨 아래 순항한다.

리기산은 베기스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피츠나우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베기스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은 우리를 비롯해 베기스 정거장에서 내린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케이블카가 보인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 이용자는 기차도 무료이고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무료다. 다른 관광지도 비슷하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가 있으면 무료거나 50% 할인이 대부분이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 트래블 패스는 필수이다. 심지어 동유럽 기차 패스와 달리 스위스 트래블 패스는 시내 대중교통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튼, 베기스에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간다. 칼트베드에서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리기산 꼭대기를 올라가니 장관이 펼쳐진다.

리기산 앞쪽으로 거대한 호수가 펼쳐진다. 그리고 호수 뒤쪽으로 루체른이 보인다.

호수 뒤쪽의 반대방향으로는 필라투스 산이 보인다.

필라투스 산과 하늘, 호수 모두가 조화를 이룬다.

올라온 것은 리기산이지만, 정작 보는 경치는 필라투스 산이다.

끊임없이 셔터를 누른다.

 

▲ 리기산 정상에서. 호수 뒤쪽으로 필라투스 산이 보인다. 사진속 인물은 동생     © 뉴스다임

 

리기산 정상에서 보니 아래에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버지께서 패러글라이딩을 하자고 하신다. 예약을 해야 하고, 또 기왕이면 더 멋진 장소에서 하고 싶은 이유로, 인터라켄이나 체르마트에서 하기로 약속을 드리고 내려온다.

 

내려올 때는 반대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피츠나우까지 가서 배를 탄다.

피츠나우에서 루체른까지 우리를 태운 배는 물레방아 배다.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물레방아 배다.

 

요즈음의 배들은 엔진이 배 뒤 쪽의 스크류를 돌리는 형태로 나아가는데, 과거의 배들은 엔진에 배 양쪽의 물레방아같이 생긴 바퀴를 돌려서 앞으로 나아간다. 창가를 보니 물레방아처럼 생긴 바퀴가 양쪽에서 돌아가면서 물을 뒤로 밀어내는 것이 보인다. 이 방식의 배는 방향 전환 방법이 재미가 있다.

 

기존의 배는 스크류 뒤에 있는 방향타를 바꾸어 주면서 배의 진행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이 배는 양 쪽의 바퀴속도를 조절하여 방향을 바꾸게 된다. , 스크류 방식의 경우 조타수가 방향타를 바꾸어 배의 진행방향을 바꾼다면, 이 배의 경우는 기관실에서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함교에서 기관실에 이르는 파이프와 나팔 같은 것이 있는데, 함장은 이 파이프를 통해 기관실에 방향을 지시하고 기관실에서 양현의 바퀴 속도를 조절한다.

 

▲ 배 안쪽의 기관, 승객들에게 공개되어있다.     © 뉴스다임

 

어느덧 루체른에 도착했다.

오후 4시 남짓. 필라투스에 가기는 빠듯한 시간이다.

수하물 분실만 아니었어도 필라투스까지 가고 이후의 일정을 여유있게 가지는데, 아쉽지만 시내 구경을 조금 일찍 하기로 한다.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루체른의 카펠교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중간의 탑같이 생긴 바서투름은 한때 감옥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인 카펠교, 가운데 바서투름이 보인다.     © 뉴스다임

 

카펠교의 일부는 화재로 손실되고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카펠교 다리 위로 올라가 보니, 안쪽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들의 의미는 사실 잘 모른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서 밥을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다음 장소는 빈사의 사자상.

스위스의 아픔을 고스란이 나타낸 작품이다.

 

지금이야 스위스 물가가 워낙에 비싸고, 관광업이 발달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이러한 스위스에도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다.

날씨가 추운 고산지대라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스위스는 낙농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외화를 벌기 위해서 외부에 용병을 자주 파견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도 용병에 대해 자주 언급돼 있듯이그 당시의 용병은 현재의 용병하고 개념이 다르다. 나라와 개인, 집단과 개인 차원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차원에서 용병 거래가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 슬픈 표정의 빈사의 사자상     © 뉴스다임

 

프랑스 혁명 당시 스위스 용병들도 그랬다고 한다.

루이16세를 비롯해 황실 근위대와 모든 군사들이 도망간 시점에도 스위스 용병만큼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 남았다고 한다.

 

혁명군들도 스위스 용병은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일 뿐더러 집에 가족을 두고 팔려 나온 사람들이니 기분이 좋았을까.

스위스 용병들 또한 살고 싶었을 것이고,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들이 도망가면, 자신들의 가족들과 후손들은 용병업을 할 수 없다. 자신들이 끝까지 남아 충성스러움을 나타내야 자신들의 가족과 후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용병대는 원래 오합지졸이고, 야심적이고, 기강이 문란하고, 신의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은 신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성실하지도 않다. (중략) 용병은 군주에게 아무런 애착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찮은 보수 외에는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전혀 없기에 그런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기꺼이 군주의 병사가 되고자 하나,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달아나거나 탈영하기 바쁘다(2014, 신동준 옮김).’

 

그 당시의 스위스 용병이 그러했는지, 이탈리아가 고용한 용병은 스위스 용병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빈사의 사자상을 만들게 한 스위스의 용병들은 그러하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빈사의 사자상은 창에 찔려 있다. 아프고 슬픈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그 아픔에도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방패를 놓지 않고 있다. 끝까지 남아있는 신념과 충성심이다.

그러한 신념과 충성심이 하늘을 감동시켰을까.

 

현재 바티칸 교황청도 스위스의 인력만이 배치돼 있으며그 조건으로 인해 관광사업이라는 거대한 축복을 받은 듯하다. 조그마한 나라가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기도 쉽지 않고, 각종 복지사업을 펼치기도 쉽지 않다.

 

살기 힘들다는 나라가 어느새, 전 세계에서 이민 오고 싶어하는 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데는 그만한 희생과 아픔과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계속)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뉴스다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