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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루터의 발자취를 더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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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기자
기사입력 2017-10-30

‘루터 슈타트(뜻: 루터의 마을)'이라고 지칭되는 비텐베르크.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약 100km 떨어진 이 작은 마을은 올해 유럽 역사에 기념할 만한 해를 맞아 방문객들로 붐빈다. 올해는 종교 개혁 500주년이기 때문이다.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를 발행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 항의해 신학자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내붙인 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종교 개혁은 이를 계기로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루터가 남긴 발자취와 500년 후 독일의 지금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 마틴 루터의 독일어 번역 성경     © flickr

 

루터의 성경 독일어 번역은 왜 위대한 업적이었나?

 

비텐베르크 기차역에 도착하면 역 주변은 매우 스산한 분위기로, 뭔가 볼거리나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도심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거대한 성경 조형물이 눈에 띈다. 500주년을 기념해서 올해 출시된 루터 번역 성경개정판을 본뜬 길이 27m의 거대한 복제본이다.

 

루터의 업적 중 하나는 성경의 독일어 번역이다. 16세기 당시 성경은 주로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이를 위해 라틴어를 공부한 성직자 밖에는 읽을 수 없는 특수 언어였다.

 

일반 서민뿐만 아니라 귀족과 부유한 상인 등도 라틴어는 난해한 언어였기에 라틴어를 읽지 못한다는 것은 즉 성경에 무엇이 써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일은 즉 복음의 민주화였다고 할 수 있다.

 

시대도 도왔다. 루터가 등장하기 전 1445년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를 발명했으며, 이 기술이 번역 성경의 보급을 더욱 촉진시켰다. 지금으로 치면 인터넷의 발명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 마틴루터 동상     © flickr

 

면죄부가 상징하는 '회개'에 대한 인식

 

비텐베르크 마을 입구 쪽에 세워진 마틴 루터 기념관은 루터가 수도사로서 1508년에 이주한 뒤 가정을 가지고도 35년간 살았던 루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낸 곳이다. 기념관에는 16세기 당시 사용된 면죄부용 수금 상자도 전시돼 있다.

 

당시 면죄부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사원의 수리 비용 마련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황 레오 10세가 발행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유럽 내에서도 특히 독일에서 가장 널리 판매됐다.

 

그 이유는 마그데부르크 주교였던 알브레히트 추기경이 여러 주교 자리를 얻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막대한 기부를 했고, 그로 인한 채무 상환을 면죄부 판매에 따른 수익금으로 충당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속사정을 알기 전에 면죄부를 문제 삼고 있었다. 이는 사람들이 죄를 돈으로 대속하기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데 대한 우려였다.

 

"95개조 반박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4장 17절)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회개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36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죄와 벌에서 구원받고 그 구원은 면죄부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95개조 반박문”은 회개의 정의를 바로 잡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루터의 좌우명이었던 성구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장 38절)라는 구절이 있다.

 

당시 교회에 기부를 선행으로 권장하고 "행함으로 천국에 간다"고 하며 돈을 모은 교회의 부정부패를 루터는 추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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