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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세계를 움직인 이들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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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Go 기자
기사입력 2018-04-06

 

▲ 워싱턴DC에서 연설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구글 프리이미지)    © 뉴스다임

 

날지 못한다면 뛰십시오,

뛰지 못한다면 걸으십시오,

걷지 못한다면 기십시오.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목사, 1968 4 4 39세의 젊은 나이로 멤피스에서 생을 마감한지 

50주년을 맞은 해에 그의 명언을 되새겨본다.

 

 

1929년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모오하우스 대학 신학과 졸업, 펜실베니아주 체스터의 크로저 신학교 졸업,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교회에서 담임 목사직을 맡고부터 자신의 인생을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투쟁에 건다.

 

앨라배마주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고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젊은 목사였던 그는 로자 파크스의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탁월한 연설 능력과 카리스마로 5만 여명의 시민을 동참시킨 행진의 맨앞에 섰다.


1956년 12월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난 후에는 그야말로 인권운동가로서 스타가 됐고 흑인 민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흑인 해방 운동과는 달리 비폭력 노선을 고집한 그는 일부 흑인 지도자들한테 비판받기도 했지만 지지층을 넓혀 나갔다. 


1963년 8월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25만 명의 관중을 두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을 했다. 지금도 킹 목사하면 떠오르는명연설이며 최고의 영어연설문으로 꼽힌다. 196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노벨상까지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자 흑인 민권 운동에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견제도 심해졌다. 존 F.케네디 대통령은 킹 목사에 대한 도청을 지시한 바 있다.

 

50년 동안 FBI 국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공작 정치를 했던 에드거 후버 국장은 다른 많은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에게 하듯이 킹 목사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그가 여성편력이 심하다는 내용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물론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도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킹 목사가 민권운동에 투신한 이후로 그와 그의 가족은 항상 위협에 시달렸다. 비폭력주의자로 유명했던 그가 가족의 보호를 위해 총을 소지하고 다닐 정도였다.

 
1968년 4월 3일 테네시주의 흑인 청소 노동자 파업투쟁을 지원하러 간 킹 목사는 암살자가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 또한 피신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나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오래 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고 다음 날 그는 암살을 당했다. 


"악에 대항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악에 협력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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