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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낯선 경험: 아직도 새로운 그림 이야기'

중국 젊은 엘리트들에게 폭넓은 지지 받는 비판적 지식인 천단칭.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낯선 경험으로서의 명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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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애 기자
기사입력 2018-04-03

 

▲ '낯선 경험: 아직도 새로운 그림 이야기'  책표지   © 뉴스다임

 

이 책의 제목인 ‘낯선 경험: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도서출판 선 펴냄)는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제목만 봐서는 화가와 미술 작품을 다루는 대중적인 교양서가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원서의 제목이 ‘낯선경험-아직도 새로운 그림이야기’이 된 것도,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원서 제목을 따르기로 결정한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낯선 경험 그 자체이며, 저자에게 그러했듯 책을 읽을 한국 독자에게도 이 책은 낯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인 천단칭(陳丹靑)은 중국의 유명 화가이자 작가이며, 날카로운 평론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중국의 젊은 엘리트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중국 현대화가 가운데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군에 속하는 그는 많은 독자를 거느린 베스트셀러 수필가이기도 하다.

 

천단칭의 글쓰기는 미술, 음악, 문화, 역사, 인물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그런데 천단칭의 여러 저작 가운데 전문적으로 미술을 다룬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수필집에 간혹 화가나 그림을 주제로 쓴 글이 포함된 적은 있어도 이 책처럼 주제부터 미술 작품 감상인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예술이란 창작이든 감상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다. 그래서 천단칭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것은 마음 맞는 친구 두어 명과 사적으로 교류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주제라고 여긴다.

 

미술 교육이라는 것에 회의를 품고 대학 교수직을 때려치운 적도 있는 그는 "그림을 이렇게 보아라"고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고, 세상이 다 아는 지식을 재삼 떠벌이는 것도 거절한다.


천단칭에게는 친구들과 수다로 풀던 미술 감상론을 불특정다수의 독자에게 펼쳐 보인다는 것부터 낯선 일인데, 이 책은 출간을 목적으로 쓴 것도 아니었다.

 

천단칭은 2015년 출판사가 기획한 인터넷 영상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천단칭이 출연해 직접 쓴 강연 원고를 천천히 읽는 동안, 언급되는 미술 작품이나 사진 자료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책은 프로그램을 위해 작성한 원고를 나중에 묶어낸 것이다.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천단칭은 몹시 낯선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보였다.


이런 낯선 경험 속에서 천단칭이 찾아낸 해법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눈높이로 선정한 화가와 작품만 다루며,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좋아하는지’를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그림들은 오로지 천단칭의 시선, 관심, 선택에 따른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도 낯선 경험으로 다가가게 된다.

 

가장 중요한 화가가 아니라 두 번째 정도로 중요한 화가의 걸작, 혹은 매우 유명한 화가의 조금 덜 유명한 작품을 읽는 '독특한 명작 감상기'


이 책에 나오는 사람과 그림은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화가나 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천단칭은 미술사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떠들어댄 유명한 이야기는 가볍게 훑고 지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누구도 알지 못했던 숨은 천재와 걸작을 발굴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의 시선은 가장 중요한 화가가 아니라 두 번째 정도로 중요한 화가의 걸작, 혹은 매우 유명한 화가의 조금 덜 유명한 작품에 머문다.


천단칭은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검색 한번 하면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다. 이 책이 표방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정보’다. 그런 정보는 중요하지는 않아도 아름다움을 능동적으로 감상하게 한다.


평생 에스파냐 왕가를 위해 일한 화가 벨라스케스는 예순이 되어서야 겨우 총관 직위를 얻었다. 벨라스케스는 기쁜 나머지 총관의 정복을 차려 입은 자신을 그림 속에 표현했다.

 

고촐리(Gozzoli) 역시 자기 자신을 그림 속에 슬쩍 집어넣었다. 그는 손가락 네 개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림 값으로 400플로린이라는 거금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자랑하고 대대손손 알리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서 그들의 그림을 보면 느낌이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벨라스케스의 열쇠꾸러미를, 고촐리의 치켜세운 네 손가락을 떠올리면 그들이 이웃집 친구처럼 느껴진다.


예술사는 종종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본다. 하나의 시대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가장 유명한 사람만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대를 단순화하는 것은 일종의 오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부터 3등까지 뽑았다고 해서 이 세 사람이 우리 시대의 노래 실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떠받드는 예술사란 그것을 집필한 사람이 시대별로 역사에 붙여준 라벨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만리장성, 피라미드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한 눈에 보겠다고 미니어처로 살펴보는 격이다.

 

전체란 종종 부분보다 믿기 어렵다. 이 책은 그렇게 예술사의 작은 부분들, 두 번째로 중요한 그림과 화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이 책은 정통 예술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따라 간다. 왕희맹(王希孟)의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 부팔마코(Buffalmacco)의 〈죽음의 승리〉, 장자오허(蔣兆和)의 〈유민도(流民圖)〉를 비롯해 바지유(Bazille)의 인물화, 발라동(Valadon) 모자의 그림, 청나라 때의 궁정 화가가 그린 〈강희남순도(康熙南巡圖)〉와 〈건륭남순도(乾隆南巡圖)〉, 베네치아의 화가 카르파초(Carpaccio), 러시아의 화가 수리코프(Surikov), 피렌체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페르가몬 지역의 석조군 등, 거의 다 예술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생소한 얼굴들이다.

 

천단칭은 이런 낯선 얼굴을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사람다운 예술가적 열정과 안목, 개인적인 감상과 깨달음이 융화된,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유명한 화가는 고흐 정도다. 그러나 고흐의 유명한 걸작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고흐의 초기작 중 제목도 붙지 않은 습작품이나 소묘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천단칭은 그런 그림을 통해 고흐의 어리석을 만큼 우직한 성격적 특질을 깊이 있게 논하면서 그런 성격이 드러난 그림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를 말한다.


천단칭은 고흐의 초기 습작품을 ‘못 그렸다’고 말하면서도 ‘보기 좋다’고 한다. 그 이유를 말로는 설명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눈으로 보고 또 보면서 느껴보라고 충동질한다. 그는 미술 감상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자신의 감상 기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꿈틀대는 생명체로서 작품이 최초로 발생한 토양 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한편, 동서고금을 넘나들어 비교하다


이 책은 열여섯 꼭지로 구성되는데 꼭지마다 화가 한 명, 작품 하나를 선정해 깊이 파고들어 가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화가와 작품에만 집중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 천단칭은 특히 ‘미완성’이라는 개념에 천착한다.

 

완성하지 않은 그림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림이 완성됐다고 말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캔버스를 다 칠하면 완성인가? 미완성 작품이 있다면 과도하게 완성한 작품은 없을까? 이런 신선한 질문의 해답을 찾아 여러 화가와 작품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는 대목은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부분이다.


사실 주제로 삼은 화가가 따로 있어도 화가 한 명, 작품 하나만 오롯이 논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려 한다. 천단칭은 작품을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로 보며, 그 생명이 최초로 발생한 토양 속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려고 한다.

 

곧이어 작품이 발생한 토양에서도 빠져나와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한다. 천단칭은 미술관들이 왜 어마어마한 자본을 들여서 작품이 처음 탄생했을 때의 원래 환경에 가깝게 배치하려 하는지 설명하고, 서양에 존재하는 죽음의 예술과 죽음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중국의 예술을 비교하며, 서양의 투시법이 사진 촬영의 기술에 미친 계몽적 영향을 분석하는 동시에 중국에서 발달한 전경(全景)을 보는 참신한 시각이 결국 두루마리 그림에 그치고 만 이유를 고민한다.


이 책의 마지막 꼭지는 남성용 소변기를 미술 작품으로 전시했던 뒤샹(Duchamp)에 대한 이야기가 장식했다. 이 꼭지에서는 뒤샹이 ‘회화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것에 집중한다. 천단칭은 뒤샹이 회화를 포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회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을 언급한다. 회화의 시대는 정말로 끝났을까? 해답 없이,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천단칭은 회화의 시대를 종결한 뒤샹의 이야기로 이 책을 종결한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예술사가 아니라 예술가이며 예술 그 자체다. 이런 다양한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낯선 경험이 된다. 그림을 해설하는 책이 서점에 많이 나와 있지만, 예술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는 책이 또 있을까? 유명한 그림이 아니라 천단칭이라는 한 화가의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으로 고른 그림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도 낯설고, 그렇게 고른 그림이 오랫동안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그림’이라고 배웠던 예술사의 선택을 배제한 두 번째로 중요한 화가와 작품이라는 점도 낯설다.

 

이 책은 이렇듯 저자와 독자의 여러 낯선 경험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세상의 낯선 그림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우리가 예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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