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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유적지를 가다<1> 서울 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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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빈 기자
기사입력 2018-08-28

▲ 정동제일교회 본예배당 건물   © 뉴스다임 박원빈 기자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경향신문사까지 2km 정동길 중간의 분수대가 있는 너른 광장 앞, 이화여고와 배재역사박물관으로 갈라지는 중앙에 1887년 10월에 설립된 정동제일교회가 운치 있게 서 있다. 

 

흔히 정동교회라고 불리는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은 한국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 교회 건축물이다. 이곳은 미국 공사관과 이화여고, 배재학당이 이 부근에 있어 미국 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심지였다.

 

▲ 정동제일교회 100주년 기념탑     © 뉴스다임 박원빈 기자

 

1885년 10월 11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H.G.)에 의해 설립됐으며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의 근대교육을 창시하고, 또한 이를 보급했다. 

 

1979년 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건축한 교회와 벧엘예배당이 잘 어우러져 있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은 1899년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 예배당으로, 아담하고 고풍스러워 방문자가 많다. 

 

▲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초기모습(사진제공 : 정동제일교회)     © 뉴스다임

 

정동제일교회는 초창기부터 그 옆에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있어 학생들이 그 교회의 중요 회원이 되어 개화운동의 한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서재필이 오랫동안 미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정동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를 조직해 독립협회 전위대를 만들었다. 

 

정동제일교회 지하의 파이프 송풍구에서 3·1 운동 때는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했다. 당시 담임목사는 이필주로 33인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이 교회 장로였던 박동완도 이필주 목사와 함께 33인 민족대표로 참가했다.

 

▲ 정동제일교회     © 뉴스다임 박원빈 기자

 

유관순 열사도 정동제일교회에 출석해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담임 목사 손정도 목사는 유관순 열사의 신앙적 멘토였다.

 

유관순 열사는 손정도 목사의 설교를 통해 신앙의 에너지를 나라 사랑의 실천으로 승화시켜야 함을 배웠다.

 

매일같이 새벽에 홀로 기도실을 찾아 조국 해방을 위해 기도할 정도로 신실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애국자로서 면모를 갖춰나갔다. 일제강점기 정동교회는 항일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 정동제일교회 산책로     © 뉴스다임 박원빈 기자

▲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뒤     © 뉴스다임 박원빈 기자

 

1919년 손정도 목사는 3·1 운동 직전 상하이로 건너가 안창호와 김구 이승만 등과 함께 임시정부 설립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이 됐고 국무위원(교통부 장관) 등의 중요한 자리도 역임했다.

  

1894년에는 교인수가 200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고 1895년 9월에 착공해 1897년 12월 26일 봉헌식을 가졌다.

 

이 건물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세기 교회건물이다.

 

▲ 정동제일교회 파이프 오르간(사진제공 : 정동제일교회)     © 뉴스다임

 

1918년에는 한국에서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성가대가 운영됐는데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예배당 강대상 쪽이 폭파되면서 파이프오르간이 파괴됐다.

 

1976년 문화공보부가 19세기 건축물인 붉은 벽돌 예배당을 사적 제256호로 지정함에 따라 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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